이지영 한국청렴윤리연구소 원장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그런 나라다운 나라를 원한다.

데스크 승인 2020.01.24 17:09 | 최종 수정 2024.03.22 13:13 의견 0
이지영 한국청렴윤리연구소 원장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이세돌의 패배는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그 일이 있은 후 이제 로봇은 우리가 아는 부자연스러운 동작의 고장난 양철로봇이 아니라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수도 있는 두려운 존재로 확실히 자리매김 했다.

뿐만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세계적 화두로 이끌어 낸 ‘다보스포럼’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직업이 로봇으로 대체 될 것이라며 대량 실업을 예고 했다. 나이키의 경쟁상대는 아디다스가 아니라 닌텐도였던 것처럼 이제 나의 경쟁자는 더이상 내 옆자리의 친구가 아닌 인공지능 로봇이됐다.

이렇듯 아직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는 기대보다는 ‘과연 내 일자리는 무사할까’를 걱정하게 만드는 두려운 존재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이렇게 인간도 아닌 로봇따위를 두려워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지난해 한국 경제 성장률은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높은 임대료와 최저임금제 등 실험적인 정책의 댓가로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몰렸으며, 그나마 정부가 선방을 했다며 자화자찬한 취업률은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볼수록 허탈한 웃음만 나올 지경이다. 한마디로 그 숫자들을 말로 풀어 우리의 현실에 적용해 보면 ‘할아버지는 일터로, 아빠는 실업급여로, 아들은 알바’를 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이제 우리가 불과 얼마 전까지 걱정했던 ‘밥그릇 하나 가지고 아버지와 아들이 싸우는 상황’에 대한 걱정은 그나마 사치가 됐다. 이젠 ‘밥그릇 하나 가지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싸우는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멀쩡히 돈벌이는 하던 아버지는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상황을 견뎌야 한다. 아직 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오지도 않은 지금도 이렇게 힘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너나없이 공무원이 되려고 한다. 아예 고등학생때부터 공무원 준비에 뛰어들거나 이제는 SKY출신들까지도 9급 공무원으로 몰려 청년 취준생 10명 중 3명은 공시생인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이러한 한국의 공시열풍을 두고 '5년 안에 활력을 잃고 몰락의 길을 것을 것’이라고 경고 했었다.

몇 년 전 투자를 하려고 한국에 방문한 해외 투자자들이 노량진에 길게 줄 서 컵밥을 먹는 한국의 젊은 청년들을 보고 베트남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일화는 결코 헛소문이 아니었다. 모 언론사에서 몇해 전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장래희망을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1위가 공무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그들의 꿈이 좀 더 다양해졌지만, 대신 이제는 그 초등학생들의 부모들이 자녀가 되었으면 하는 장래희망 1위로 공무원을 꼽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기승전 공무원, 전국민의 장래희망이 공무원인 나라에 살고있다.

공무원이 나쁜가? 그렇지 않다. 재수없으면 200세까지도 산다는 말이 재앙처럼 오가는 지금 나의 정년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공무원이란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게 현명한 삶을 살아가는 것일 수 있다. 공무원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전국민의 장래 희망이 공무원이라는게 문제라는 거다. 공무원은 생산적인 영역이라기 보다는 관리직에 가깝지 않은가. 이렇게 너나없이 다 공무원이 되겠다고 하면 그 많은 ‘공무원 월급은 누가주나’라는 생각에 미치지 않을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민이 월급을 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정적인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직업을 선택했든 다른 이유로 선택했든 이에 앞서 그들에게 전제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보통의 시민들 보다 높은 수준의 봉사정신과 희생정신 그리고 윤리 의식과 도덕성이다. 더군다나 지금 국민들은 작년 경제성장률에서 알 수 있듯이 ‘혈세’라고 하는 말이 딱들어 맞을 정도로 그 세금을 피를 말려가며 서라도 내고 있다. 그래서 지금 그 어떤 때보다도 공무원에게는 이러한 수준 높은 자질이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전 20~30대 신임 공무원과의 점심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공무원들은 자신부터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며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되, 국민을 위해 자신을 다 버리거나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 현실적으로 요즘 민간기업이고 공무원이고 누가 자신을 다 버리며 일을 하고 있는가. 그런 자기희생을 통해 조직을 살린 얘기는 이미 예전 대기업에서 창업주의 신화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된지 오래다. 당장 서점가의 베스트 셀러에 오른 책들의 제목만 봐도, 개인의 자존감이 그 어떤 때보다 중요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개인의 행복이 삶의 가장 중요한 1순위가 된 지금 설마 공무원이라고 그렇게 살지 않고 있을까봐 걱정되어 저런 발언을 한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이미 전국민의 장래희망이 공무원이 되어 너나 할 것 없이 공무원이 되려고하는 이유가 설마 국가를 위해 봉사와 희생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걱정되서 하는 말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반대로,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이 그의 칼럼에서 밝혔듯이 뼈빠지게 일해 ‘닥치세’내는 국민들은 그럼 뭔지? 국민은 부패 공무원에도 눈감아 주고, 공무원에게 직업윤리를 묻지도 못하고 ‘닥치세’만 하면 되는 것인지 묻고싶다. 이제는 정말이지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인기몰이에만 매몰되어 듣기좋은 소리만하는 것이 아닌, 좀 더 큰 틀에서 나라의 밑그림을 그려주고, 힘든 와중에도 세금을 착실히 내고 있는 국민에게는 세금이 허튼데 쓰이지 않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그런 나라다운 나라를 원한다.

출처 : 이지영 (한국청렴윤리연구소 원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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