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칼럼] 종묘(宗廟)에 고하다

김원숙 <유네스코 문화유산 조선왕릉 순례기>

데스크 승인 2020.10.28 20:41 | 최종 수정 2020.10.29 15:51 의견 0

2020년 10월 25일 12시 종묘에 고하였다.

김원숙 <영릉>


지난 48일 동안 조선왕릉(朝鮮王陵) 40기를 비롯하여 원(園)과 묘(墓)에 잠들어 계신 왕과 왕후,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대원군과 주요 후궁과 대군에 이르기까지 참배하였음을 말이다. 종묘에 입장하여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어로를 따라서 재궁(齋宮)에 들어가 마음가짐을 정돈하였다. 다시 재궁의 우측문으로 나와 어로를 따라 정전(正殿)으로 향하였다. 경내에 입장하여 정면의 19개 신실에 모셔진 왕과 왕후의 신위를 향해 두손모아 합장을 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좌측의 칠사(七祀)와 우측의 83위 공신전(功臣殿)에도 차례로 참배하였다. 또한 영녕전(永寧殿)으로 이동하여 태조의 4대조 이후의 신위와 정전에서 모시지 못한 추존왕을 포함한 왕과 왕후의 신위에도 참배하였다. 모든 참배절차를 마치고 영녕전 옆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지난날을 회고해 본다.

금년 9월 17일 세 번째 시도 끝에 고양서삼릉(高陽西三陵)에 입장하여 첫 참배가 이루어지고, 그 일주일 후에 서오릉(西五陵)에 다녀오면서 체력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조선왕릉의 역사에 대한 흥미가 되살아났다. 그러면서 기왕의 산발적인 경험과 합해져 참배한 조선왕릉이 15기에 달해 서서히 관심이 더해갔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36년전 군에서 전역후 서울 정릉(貞陵)에 들어가 산책을 하였던 기억이 있다. 또한 2010년에는 자원봉사활동의 일환으로 헌인릉(獻仁陵) 잔디가꾸기 작업에 참여한 바 있고, 2014년에는 강남의 선정릉(宣靖陵)에 입장하여 산책을 하였던 경험이 있다. 특히 지난 5월 29일에는 여주의 신륵사(神勒寺)와 함께 세종대왕릉을 참배하였다. 사실상 7기의 조선왕릉 참배 경험이 있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모든 조선왕릉을 순례하여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9월 29일 동구릉(東九陵) 참배를 하고보니 조선왕릉 40기의 절반이 넘는 24기에 달하면서 모든 왕릉 참배로 결심이 굳어지게 되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일산 신도시 주변 지역에는 많은 조선왕릉이 분포하고 있다. 고양의 서삼릉을 비롯하여 서오릉 그리고 인접한 파주의 파주삼릉(坡州三陵)과 장릉(長陵), 양주의 온릉(溫陵), 김포의 장릉(章陵) 등이 그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 40기 가운데 삼분의 일이 넘는 14기가 소재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지리상의 이점이 모든 조선왕릉 순례라는 결심에 일조를 하였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고양서삼릉 참배로 시작된 조선왕릉 40기 순례행진은 10월 15일 여주의 영녕릉(英寧陵)에 대한 참배로 마무리 되었다. 이어서 16일부터 24일까지는 파주의 소령원(昭寧園), 남양주의 흥선대원군묘와 덕흥대원군묘, 포천의 전계대원군묘를 비롯하여 서울 상도동의 양녕대군과 방배동의 효령대군의 사당도 참배하였다. 조선왕릉에는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왕권을 행사한 연산군과 광해군 묘까지도 참배하였음은 물론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북한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두 기의 왕릉, 즉 태조의 원비 신의고왕후의 재릉(齋陵)과 정종과 정안왕후의 후릉(厚陵)도 참배하고 싶다. 519년 조선왕조의 27대 모든 왕과 왕후의 42기 왕릉을 순례하는 날이 도래하기를 학수고대 한다.

조선왕릉 순례가 처음에는 즐거움과 호기심에서 출발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참배는 즐거움보다는 전투가 되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안장걸음으로 걷고 즐기다가, 점차로 왕릉소재지가 원거리가 되고 대중교통편이 열악함에 비례하여 새벽출근이 되고 종종걸음이 되어 마침내는 고역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다. 오히려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변하였다. 왕릉매표소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현장 촬영이 시작되므로 인적없는 사진을 확보하기 위해 혈투를 벌였다. 홍살문(紅箭門)에서 정자각(丁字閣) 그리고 능침(陵寢) 에 이르까지의 기본구도에 고요함과 평화를 담아야 했기에 코로나19로 참배인원이 적어 오히려 덕을 보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왕릉은 그래도 참배객이 적지 아니하여 순간적인 포착이 쉽지 않았다.

산책을 마치고 종묘(宗廟)를 나서니 새롭게 단장한 세운상가(世運商街) 건물이 마주한다. 나는 3층으로 올라가서 멀리 북한산(北漢山)을 배경으로 숲속에 편안하게 자리한 종묘를 바라보면서 경건함과 함께 그윽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힘이 세상에 신기운(新機運)을 불러일으켜 나도 모르게 끝이 보이지 않은 세운상가의 비상(飛翔)을 따라 남산(南山)으로 날아가는 꿈을 꾸고 있었다. 실제 내 몸도 움직이기 시작하여 청계천(淸溪川) 상공을 지나 충무로(忠武路)를 거쳐 명동성당(明洞聖堂)에서 심호흡을 한 번 한후 힘차게 걷기 시작하여 단숨에 조계사(曹溪寺)에 이르렀다. 온통 국화송이로 단장한 부처님께서 미소로 환영한다. 나는 마당에 놓인 의자에 앉아 대웅전(大雄殿)의 부처님께 조계사가 이 나라의 원찰(願刹)로서 역할하여 주심에 감사드리며 조선왕릉에 잠들어 계신 분들의 영혼을 평안하게 해주시고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령(生靈)에게 한없는 평화(平和)와 자비(慈悲)를 베풀어 주시기를 염원(念願)하였다.

<순례일정>

- 9월 17일 고양 서삼릉

- 9월 27일 고양 서오릉

- 9월 29일 구리 동구릉

- 10월 2일 남양주 홍유릉, 사릉, 광해군묘

- 10월 3일 화성 융건릉, 용주사

- 10월 4일 파주 삼릉, 장릉

- 10월 6일 김포 장릉

- 10월 7일 서울 태릉, 강릉, 의릉

- 10월 8일 남양주 광릉, 봉선사, 연산군묘, 정의공주묘

- 10월 9일 영휘원, 숭인원

- 10월 10일 양주 온릉

- 10월 11일 영월 장릉, 청룡포

- 10월 13일 서울 정릉, 흥국사, 국립4.19민주묘지

- 10월 14일 서울 헌인릉, 선정릉

- 10월 15일 여주 영녕릉

- 10월 16일 파주 소령원, 수길원, 보광사

- 10월 17일 남양주 흥선대원군묘, 다산 정약용 유적지

- 10월 19일 남양주 덕흥대원군묘, 흥국사

- 10월 20일 포천 전계대원군묘

- 10월 21일 광명 영회원, 오리 이원익 유적지(충현박물관)

- 10월 22일 서울 상도동 양녕대군 사당(지덕사)

- 10월 24일 서울 방배동 효령대군 사당(청권사)

- 10월 25일 서울 종묘, 조계사, 명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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