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연사 염재호 박사 (대통령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부위원장)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고, 2015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한국과학재단 이사, 서울연구원 이사, 한일미래포럼 대표 등 다양한 공공‧학술 분야에서 활동해왔으며, 2023년에는 ‘한국판 미네르바 대학’으로 불리는 태재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지난해에는 국가인공지능(AI)위원회 초대 부위원장에 위촉되며 혁신적 리더십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에듀의 인터뷰(1)>

“창의성과 공감, 질문력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무기…강의 대신 토론, 평가 대신 성장 중심으로 대학 교육 구조 전환해야”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과제를 작성하고, 그림을 그리며, 지식 전달까지 대신하는 시대다. 챗GPT, 미드저니, 믹스 오디오 등 기술의 발전은 대학 강의실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며 교육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제 교육은 ‘무엇을 얼마나 잘 가르칠 것인가’보다 ‘왜 배우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철학적인 전환점에 이르렀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은 이러한 흐름을 두고 “문명 자체가 바뀌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그는 더 이상 교육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중심에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려대학교 총장 재임 시절부터 ‘탈산업화 시대의 대학 교육’을 고민해온 염 총장은, 현재 태재대에서 AI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교육 모델 구축에 힘쓰고 있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교육은 더욱 인간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 AI가 더 이상 낯선 기술이 아닌 일상이 된 변화의 흐름에 대하여

“요즘 ‘AI시대’라는 말을 참 많이들 합니다. 저는 이걸 단지 기술이 조금 더 편리해졌다는 정도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문명 자체가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느껴요. AI는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걸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눈, 사회를 이루는 방식까지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습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2045년쯤 ‘AI 특이점’(Singularity)이 온다고 했고,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2050년쯤이면 인간의 존재 방식 자체가 달라질 거라고 이야기했죠. 저는 그 변화가 이미 시작됐고, 우리가 체감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단순히 직업 몇 개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에요.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인간답다는 건 무엇일까?’, ‘교육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같은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AI시대에 인간은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할까’를 교육이 묻고, 함께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 AI시대를 맞이하며 교육자로서 가장 깊이 고민하신 지점

“제가 가장 많이 고민한 질문은 ‘AI시대에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가’였어요. 기술이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체하게 되면 인간은 더 이상 단순히 ‘일하는 존재’(호모 파베르, Homo Faber)로만 머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제 ‘놀이하고, 창조하는 존재’,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변화해야 합니다. 이는 단지 기술에 적응하자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사고방식 전반이 전환기를 맞았다는 의미죠.

약 15년 전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주 3일 근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제 그 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죠.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근무 시간이 줄었다’는 것이 아니라,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누가 더 오래 일하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거예요.

그래서 저는 늘 이렇게 강조합니다. ‘시간을 관리하지 말고, 일을 관리하라’, ‘눈에 보이는 활동보다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자’고요. 태재대학교 역시 이 철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출퇴근을 강제하지 않고, 협업 도구를 활용해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업무를 설계하고 기록하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일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성과를 냈고, 무슨 가치를 창출했느냐입니다. 이제는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과감히 도전하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요구됩니다. 그런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오늘날 교육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믿어요.”

─ AI시대에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 꼭 갖춰야 할 생존 전략

“많은 사람이 ‘AI에게 밀릴까 봐 두렵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AI에게 밀리는 게 아니라,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에게 밀리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중요한 건 기술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을 내 일상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느냐입니다. 앞으로는 AI를 얼마나 익숙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생존의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마치 신대륙이 막 열렸을 때와 비슷합니다. 오픈AI나 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이미 AI라는 고속도로를 깔아놨고, 우리는 이제 그 위에서 어떤 가능성을 펼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굳이 도로를 다시 만들 필요는 없어요. 그 위에서 어떻게 나만의 방식으로 창의성을 발휘하느냐가 관건이죠.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실제로 자동차 옆에 사람이 깃발을 들고 따라다녀야 한다는 규제를 제안한 사례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면허만 있다면 자유롭게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습니다. 왜 가능했을까요? 브레이크와 신호, 도로라는 인프라가 함께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AI가 무섭다’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AI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때죠. 바로 그 역량을 갖춘 사람이 자신의 생산성과 역량을 열 배, 백 배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생존자이자, 미래를 이끄는 리더가 될 거예요.”

─ 교육의 본질적인 역할

“교육이란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내는 일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한 사람이 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전인적 과정이죠. 그동안의 교육은 산업화 시대에 맞춰 지식을 세분화하고 조립하듯 가르치는 데 집중해왔습니다. 학생들도 정해진 전공 하나를 깊이 파고들어 평생 그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일반적이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 번 배운 것으로는 평생을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누구나 인생을 두세 번쯤 새롭게 설계하고, 그때마다 다시 배우고 성장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게다가 오늘날은 스마트폰만 켜도 웬만한 정보는 다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가 중요한 시대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보 속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어떤 질문을 던지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지가 핵심 역량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AI시대 교육의 중심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교육은 오히려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공감, 협력, 책임감과 같은 정서적·사회적 역량은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힘이죠. 앞으로의 교육은 바로 이 인간다움을 길러주는 데 가장 집중해야 합니다.”

─ 교육을 통해 궁극적으로 길러야 할 인재상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무엇보다도 ‘깊이 있게 사고하는 힘’이 중요합니다.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되죠. 이제는 선생님에게서 일방적으로 배우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AI 기반 학습 도구와 플랫폼이 일상화된 지금, 스스로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인재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고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어요. 그런데 여전히 많은 부모님들이 ‘좋은 성적을 받아서 의대나 대기업에 가야 한다’는 20세기식 성공 공식을 좇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자기 생각, 자기 언어, 자기 철학으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깊이 있는 독서와 사유를 통해 내면을 단련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런 내면의 힘이 결국, AI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자 무기가 될 것입니다.”

─ ‘자기 생각과 언어, 철학으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창의성’이란 무엇이고, 교육은 그것을 어떻게 끌어내야 하는가?

“요즘은 챗GPT가 글을 쓰고, AI가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걸 보며 ‘AI도 꽤 창의적인 것 같다’라고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AI가 만들어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데이터에 기반한 조합일 뿐이에요. 인간의 창의성은 그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깊은 차원에서 발현됩니다. 아인슈타인이 ‘지식은 제한이 있지만, 상상력은 무한하다’라고 말했죠. 그는 과학자였지만, 동시에 예술가처럼 세상을 상상할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그 점이야말로 인간만의 창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익숙한 정보를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을 의심하고,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거기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능력이죠.

하지만 지금의 교육 현실은 이런 창의성을 키워내기에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 어땠어?’라고 물으면 ‘맛있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고, ‘재미있었니?’라고 물어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죠. 늘 정답이 따로 있다고 믿는 분위기 속에서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창의성이란 단지 아이디어가 많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생각을 표현하며, 그것을 새롭게 연결하고 구성할 수 있는 힘입니다. 교육은 바로 그 힘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창의성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 조선에듀 2025.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