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해(苦海)라고 불가에서는 말했다.
괴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개고생 하는 것이 인생일까?
천국에서는 지상계의 인생이 봄날의 소풍처럼 영계에서 누릴 수 있길 바라는 휴가이며 설레는 체험 학습이라면?
인간계 체험 학습 에서 누구는 해병대 캠프의 빡쎈 훈련을 경험해 볼 수도 있고, 모닥불이나 베치카 앞에서 편안한 독서를 경험할 수 있다.
노을 진 창가나 바닷가에 발을 담고 모래 사장을 밟을 수도 있다.
누구는 구원의 여정으로 구도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고, 아늑한 휴양지의 여유를 경험할 수도 있으며, 전장에서 영웅적 군인을 경험할 수도 있다.
지상의 삶을 바라보는 마음 곧 그 믿음이 그 인생이 되는 것이다.
결말을 아는 미스테리 극이 흥미가 없듯이 삶은 미스테리가 더 적합하다.
인생을 지지고 볶는 일상으로, 생로병사의 뻔한 스토리로 볼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이야기를 쓰는 기회이며 창작의 무대로 보는 것은 어떤가?
고대 철학자들은 고난을 단순히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드는 중요한 과정으로 보았다.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고난은 우리의 잠재력을 시험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불행에 직면했을 때 좌절하기보다는, 이를 통해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덕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치 강한 바람이 나무의 뿌리를 더 깊게 만들듯, 고난은 우리의 영혼을 단련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 역시 그의 저서에서 "시련 없는 삶은 시험받지 않은 삶"이라고 했다. 진정한 지혜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난 후에야 얻을 수 있으며, 역경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고대 사상가들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동시에 성장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들은 고난에 맞서는 용기와 인내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고통은 필연적이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고통 그 자체와 그 고통에 반응하는 우리의 태도를 구분한다. 고통스러운 사건이나 상황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절망할지 여부는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의미이다. 외부의 고난에 휩쓸리지 않고, 내면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대처임을 일깨워준다.
"나는 폭풍우가 두렵지 않다. 내 배로 항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
헬렌 켈러는 시련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시련을 통해 더 강해지는 법을 배웠다. 고난을 단순히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만 여기지 않고, 자신을 단련하고 성장시키는 훈련의 기회로 바라보는 지혜를 담고 있다. 고난의 파도 속에서도 자신의 배를 조종하는 법을 배우듯, 어려움을 통해 자신만의 강점을 발견하라는 뜻이다.
"모든 어려움 뒤에는 기회가 숨어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어려움을 단순히 장애물로 보지 않았다. 그는 모든 문제와 역경 속에 해결책과 새로운 가능성이 숨어 있다고 믿었다. 우리가 고난에 직면했을 때 좌절하기보다,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나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고난은 무조건 감내하고 버티기만 해서 소모해야 하는 인생의 군더더기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