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웠을 때 주변이 도는 듯한 어지럼증 사진 일러스트=ⓒ제민아이


“그날 밤, 그냥 누웠을 뿐인데 세상이 돌았어요.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머리가 무거웠는데, 고개를 살짝 돌리는 순간 머리가 빙글 돌더군요.”

50대 여성 A씨는 그날을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순간”으로 기억한다.
잠을 청하려던 평범한 밤, 몸을 눕히자마자 눈앞이 회전하듯 돌며 몸이 떠 있는 듯한 공포감이 밀려왔다. 이게 바로 이석증(양성 발작성 체위성 현훈, BPPV)의 첫 증상이었다.

두 번째 발병은 일하면서 찾아왔다.
“그날은 머리가 무겁고 집중이 안 됐어요.
누웠더니 또 빙글 도는 거예요.”

A씨는 이후 10개월 사이에 네 번의 재발을 겪었다.
의사는 “오른쪽 수평반고리관의 이석이 빠졌다”며 잘 때는 왼쪽으로 누워 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쪽으로만 누워 있어야 하니까 너무 불편해요.
자세를 바꾸면 바로 돌아서 무서울 정도죠.”

이석증이 심할 때는 걷는 것도 불안하다.
A씨는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는 좀 낫지만,
심할 때는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귀 속의 미세한 돌, 제자리를 벗어나면 생기는 병

이석증은 귀 속 평형기관의 미세한 돌가루인 이석(otoconia)이 제자리(난형낭·구형낭)를 벗어나 반고리관으로 들어가면서 생긴다.
A씨의 경우처럼 ‘오른쪽 수평반고리관형 이석증’은 이석이 귀 속의 수평반고리관 안으로 들어가 생기는 형태로, 누워서 고개를 돌리는 동작에서 증상이 두드러진다.

의학적으로는 결석형(canalithiasis) 또는 부착석형(cupulolithiasis)으로 나뉘며, 이석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바비큐 롤(수평관 정복술) 치료가 대표적이다.
어지럼은 머리를 움직이는 순간 갑자기 시작돼 대부분 10~15초 안에 가라앉는다.
치료를 받으면 빠르게 호전되지만, 평형감이 완전히 돌아오고 머릿속의 잔어지럼이 사라질 때까지는 보통 3~4주 정도 걸린다.

또 어지럼이 시작될 때 눈을 뜨고 안정된 곳에 시선을 고정하면 ‘시각적 보상(visual compensation)’으로 증상이 조금 완화될 수 있다.
다만 현훈이 심한 경우엔 시야 자체가 회전되기 때문에, 억지로 눈을 뜨기보다는 안전한 자세로 몸을 고정하는 것이 좋다.


비타민 D, 단순한 영양소가 아니다

A씨는 두 번째 재발 때 피검사를 받았다.
비타민 D 수치는 정상 기준(100 중 50 이상)보다 훨씬 낮은 9였다.
비타민 D 주사를 맞기 시작했지만, 보충만으로 재발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A씨는 “최근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는데, 의사도 그럴 때 재발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비타민 D 결핍·운동 부족·갱년기 호르몬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특히 햇빛 노출이 적은 실내 생활은 비타민 D 합성을 막고, 이석의 구조를 약화시켜 떨어질 위험을 높인다.

이 영양소는 단순한 비타민이 아니라 칼슘 대사를 조절하는 호르몬이다. 부족하면 골다공증 위험이 커지고, 그로 인해 귀 속의 미세한 칼슘 결정(이석) 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
골다공증 환자에게서 이석증이 더 자주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며, 이는 칼슘 대사 저하가 두 질환에 공통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비타민 D가 부족하면 단순히 뼈가 약해지는 것을 넘어 피로감, 근육 약화, 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퇴, 우울감, 불면, 갱년기 증상 악화까지 동반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골다공증뿐 아니라 인지 기능 저하나 치매 위험 증가와의 연관성도 보고되고 있다.

A씨는 “이석증을 겪으면서 비타민 D가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 알았다”며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심리적 불안과 무력감

이석증 환자들은 단순히 어지러움보다 ‘언제 또 돌까’ 하는 불안을 더 크게 느낀다.
A씨는 “밤에 눕는 게 두렵고, 자세를 바꿀 때마다 긴장된다”고 했다.
앉아서 집중해야 하는 일도 힘들고, 일상의 자신감이 줄었다.

전문가들은 “이석증은 생명을 위협하진 않지만, 심리적 불안을 크게 유발한다”며 “질환의 원리와 대처법을 알면 불안이 훨씬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예방과 회복, ‘햇빛·움직임·충분한 휴식’

이석증은 치료 후에도 재발할 수 있지만, 생활 습관 관리를 통해 위험을 낮출 수 있다.

•하루 15분 이상 햇빛 쬐기

•비타민 D 수치 점검 및 보충

•가벼운 걷기·스트레칭

•충분한 수면, 피로·과로 피하기

•치료 후 3~4주간 무리한 움직임 자제

무엇보다 증상이 생기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 이석 정복술을 받아야 한다.
머리가 도는 원인이 귀에 있는 경우, 조기 치료로 회복이 빠르고 예후도 좋다.

많은 환자들이 ‘운전을 해도 괜찮을까?’ 묻지만, 치료 후 어지럼이 가라앉고 평형감이 안정된 뒤라면 운전은 가능하다.

A씨는 이석증을 겪은 뒤, 그동안 피하던 햇빛을 일부러 쬐기 시작했다.
“한여름에도 햇빛이 반가워요.
이젠 이석증이 두렵기보다,
‘조금은 움직이라’는 몸의 신호였다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