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촉: 소록도 의사 오동찬의 봉사 인생
"시상식 전에 가족들과 식사를 했는데, 사모님이 입고 있는 털 스웨터가 30여년 전에 오동찬 부장님이 선물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걸 또 오늘 기념으로 입고 오셨다고 하는데, 사모님께 박수 한 번 치시죠."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34회 아산상 시상식에서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박수를 유도했다.
오동찬(54)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은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27년간 한센인을 치료한 공로로 이날 의료봉사상을 받았다. 정 이사장은 오 부장의 이런 희생적 삶에 부인의 희생과 지원이 큰 힘이 됐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오 부장은 1995년 부모·선후배 반대를 무릅쓰고 소록도 공중 보건의사(군 복무를 대신하는 의사)를 자원한 뒤 27년간 한센인을 떠난 적이 없다. 아랫입술이 처져 식사를 제대로 못 하는 환자들을 위해 재건 수술법을 고안해 500명의 입술을 살렸다. 뒤틀어진 턱과 관절을 수술하고 틀니를 제작했다.
환자 집집이 찾아가서 같이 밥 먹고, 집안일을 거들었다. 월급을 떼서 치료비에 보태고 전동칫솔을 사줬다. 한센병 환자는 손이 불편해 칫솔질을 잘 못 해 구강암 같은 질환에 매우 취약하다.
오 부장은 매달 월급에서 50만원을 떼 600만원이 모이면 해외 한센병 환자를 찾아간다. 2005년부터 연 2~3회 캄보디아·몽골·베트남·필리핀으로 간다. 비용은 전액 자비이며 연차 휴가를 쓴다. 가족이 함께 가서 진료를 보조한다. 돈이 남으면 현지에 무료 급식비로 기부한다.
오 부장의 네 식구는 국립소록도병원의 사택에 산다. 집이 없다. 다른 부동산도 없고 금융재산도 별로 없다.
Q. 집이 없는데 퇴직 후 어떡할 거냐.
A. 걱정할 필요 없다. 퇴직하면 필리핀이나 캄보디아의 한센인 마을이나 빈민촌으로 가서 진료하면서 살려고 한다. 지금은 공무원 월급으로 부모님 용돈 드리고 우리 가족이 사는 데 지장 없다. 퇴직 후에는 연금이 나오는데 그 정도면 필리핀 생활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오 부장은 "해외 빈민촌 진료 후에는 항상 주민들에게 점심을 산다. 5만원이면 60~70명이 한 끼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중외학술복지재단에서 성천상(상금 1억원)을 받았고, 상금 전액을 아프리카 가나 빈민촌인 볼가탕가로 보냈다.
Q. 이번에 가장 큰 상을 받았는데.
A. 이 상은 한센인에 대한 편견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강하다는 걸 보여준다. 소록도에 오래 진료했다고 이 상을 주는 것 같은데, 이게 편견이 아니고 뭐냐. 그래서 상을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Q. 상금(2억원)은 어디에 쓸 건가.
A. 가족회의에서 필요한 곳에 쓰기로 결정했고, 소록도 주민(여행 경비), 해외 빈민촌을 위해 쓰도록 다 송금했다. 죽을 때 흙으로 돌아간다는데, 덤으로 들어온 돈을 갖고 있으면 욕심만 생긴다. 내가 가질 이유가 없다.
Q. 소록도 환자들의 상태는.
A. 소록도에는 한센병 환자가 한 명도 없다. 이미 균이 사라졌다.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는, 그냥 평범한 어르신일 뿐이다. 결핵에 걸리면 결핵 환자라고 한다. 그런데 치료되고 나서 결핵인이라고 안 부르지 않느냐. 소록도에 425명(평균 연령 79세)의 어르신이 산다. 한센병이 다 치유가 됐는데도 아직도 한센인이라고 부른다. 그냥 소록도 주민이라고 하면 된다.
Q. 감염된 사람이 없나.
A. 직원과 직원 자녀 중 이 병에 걸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균이 약하고 쉽게 치유된다. 과거 선입견과 편견 때문에 치료를 안 해줘서 장애가 남았을 뿐이다.
오 부장은 "직원 200여명(의료인 170명)이 어르신들을 목욕시키고 식사 수발하고 기저귀 갈아준다. 우리는 손이 괜찮으니까 전구를 쉽게 교체하지만, 어르신들은 그렇지 않다. 깨진 유리창 교체, 보일러 수리 등 모든 것을 직원들이 헌신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오 부장은 "이번 상은 우리 직원 200여명이 받은 상"이라며 "저보다 오래 소록도에 근무한 직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같이 고생하는데, 저만 받아서 미안하다, 내가 대표로 받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몽준 이사장은 이날 시상식에서 아산상 대상 수상자인 박세업 외과의사를 가장 먼저 소개했다. 정 이사장은 "병원비가 없어서 수술받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2005년 가족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 (해외 환자를 더 잘 돌보기 위해) 2010년 50세에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공부했고, 2012년 북아프리카 모로코로 갔다"고 소개했다.
정 이사장은 "모로코를 유명 관광지로 떠올리는데, 실제로는 의료 환경이 열악하다. (박 전문의는) 현지인과 소통하려고 아랍어·프랑스어를 공부했고, 현지인이 힘들 때 같이 있으려고 2020년 한국에서 열린 작은 아들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로코에서 공적을 인정받아 지난 3월 현지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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