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운명"…'이순신 마지막' 찾아냈다, 日서 나고 자란 이 사람

9만4341점.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 숫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반환작업을 한지 올해로 10년. 많은 문화재가 우리 품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이 지난한 작업 뒤엔 조용히 반환에 일조한 이들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일제강점기 때 사라진 다보탑 돌사자 세 마리가 일본 어디선가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전역을 훑고 다니는 이부터, 발견한 문화재를 고국에 무상으로 기증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마음을 전한다.

데스크 승인 2023.01.03 13:59 의견 0

지난 9일 오후 교토대(京都大)에서 만난 김문경 교토대 명예교수가 활짝 웃었다. “비과학적인 이야기 같지만 우연은 아닌 것 같다”며 2시간에 걸쳐 공을 들여 설명한 건 ‘대통력(大統曆)’. 대통력은 조선 시대 관에서 금속활자로 찍은 일종의 정부 달력(冊曆)인데, 임진왜란 당시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이 달력을 일기장처럼 사용한 게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를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으로 부른다. 이 달력 일기장이 최근 일본서 발견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문화재 반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김 교수다.

지난 9일 김문경 교토대 명예교수가 자신이 연구하던 교토대 인문학연구소 앞에서 서애 류성룡의 기록이 담긴 달력인 '대통력' 반환 과정을 알려주고 있다. (교토=김현예 중앙일보 특파원)

지난 2020년 5월. 교토 고서점조합이 봄 경매 목록을 김 교수에게 보내왔다. 중국 문학을 연구해온 그의 눈에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대통력’이었다. 여기엔 1600년 6월 5일 기록으로 ‘보고에 보니 강항(姜沆·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의병장)이 일본에서 왔다고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금액은 228만엔(약 2180만원)이었다.

환수된 서애 류성룡의 대통력.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사망하기 직전 모습이 적혀 있는데, 붉은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순신을 일컫는 ‘여해’다. (연합뉴스)

선조실록을 찾아보니 같은 내용이 있었다. 관심이 쏠렸지만, 코로나19 봉쇄 상황이라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일 년 뒤인 2021년 가을, 도쿄(東京) 고서점 경매 목록에서 또 같은 책을 발견했다. 이번에도 코로나19로 인해 가보지 못한 채 아는 고서점 주인을 통해 수소문해보니 팔리지 않았다는 답만 들었다.

잊고 지냈던 그 대통력이 다시 눈에 띈 건 지난 4월. 교토에서 봄맞이 고서적 경매가 열려 찾았는데, 책 한 권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앞서 두 차례나 정보를 접했던 대통력이었다. 경매 목록에 없었던 터라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는데 이순신 장군의 자인 여해(汝諧)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초서로 쓰여있었지만 ‘내가 파면됐다는 것을 듣고 여해가 한탄했다’는 문장이 보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순간부터 이 대통력에 나온 일자별 특이 행적과 동선을 외우다시피 머릿속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와 기록을 비교했다. 류성룡 연보와 대통력에 기록된 주요 행적이 모조리 일치했다. 소장 중이던 류성룡 도록 필체와도 비교했다. 필적전문 지인이 필체가 같다는 의견을 주면서 이 책이 류성룡 선생의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김 교수는 그길로 국외소재문화재단에 연락을 넣었고,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을 기록한 류성룡의 대통력은 그렇게 고국으로 돌아왔다.

2005년 충무공 김시민(1554∼1592) 장군 공신교서를 일본 고서점상에서 발견해 알린 이도 김 교수다. 경매에 나온 이 책이 알려지면서 국내에 환수 운동이 일었다. 김 교수는 후지스카 치카시(藤塚隣) 전 경성제국대학교 교수가 수집한 추사 김정희 관련 자료를 모아 교토 고려미술관에 기탁하기도 했다.

“대통력 반환이 운명인 듯”

김 교수는 일본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부친 고향은 전남 해남 문내면 선두리. 울돌목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마을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강제 철거됐다. 김 교수는 “당시 총독부가 있던 광화문 경복궁 뒤뜰에 비석이 쓰러져 있는 것을 부친이 발견해 미군에 연락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큰아버지께서 지역 분들과 농악대를 조직해 전국 순회를 하면서 돈을 모아 대첩비가 제자리를 찾았고, 비각을 지키는 어르신들 역시 같은 문중”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임진왜란과의 연결점은 또 있다. 금산 전투에서 의병 700명이 1만5000명의 왜군과 맞서 싸우다 모두 전사했는데, 당시 한 분이 김 교수의 조상으로, 그가 21대손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이를 놓고 “이번 대통력 반환이 운명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웃었다. 그는 “류성룡 종가에서 14권의 대통력을 보유하다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현재 5권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며 “일본 어딘가에서 나머지 대통력이 다시 발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토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미술관. 고 정조문 선생이 일본 전역에서 수집한 우리 문화재 1700여 점이 이곳에 있다. 지난 9일 조선왕조의 백자와 수묵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교토= 김현예 중앙일보 특파원)

묵묵히 힘쓰는 문화재 지킴이들
김 교수처럼 일본에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 문화재 수집과 반환에 묵묵히 힘쓰는 이들이 있다. 도쿄에서 고서점을 운영하는 재일동포 김강원 씨는 올해 ‘백자청화김경온묘지(白磁靑畵金景溫墓誌)’ 등을 직접 사들여 기증했다. 후손들에게 무상으로 돌려줬다.
교토대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고려미술관의 정희두 이사장도 문화재 지킴이로 나서고 있다. 지난 9일 찾아간 이곳에선 ‘조선왕조의 백자와 수묵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정 이사장은 미술관을 세운 고(故) 정조문 씨의 장남이다. 독립운동가 아들로 태어난 정조문 선생은 6세에 일본으로 건너와 막노동을 하다 파칭코로 큰돈을 벌었다. 이후 일본 곳곳에 있던 우리 문화재 1700여 점을 수집해 지난 1988년 미술관을 세웠다. 국보급 유물을 비롯해 흥선대원군 묵란, 유네스코 세계의 기록 유산에 오른 조선통신사 행렬도 등이 이곳에 있다.
부친의 뒤를 이어 혼자서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 이사장은 “항상 적자 상태인 미술관의 운영 걱정도 크지만 내년 미술관 설립 35주년을 맞아 많은 사람에게 우리 문화재를 알릴 수 있도록 전시회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한편엔 소장품 보수와 관리를 위한 모금함이 마련돼 있었다.

<출처 : 2022. 12.12 중앙일보, 교토 김현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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