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子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然四方風土區別聲氣亦隨而異焉盖外國之語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다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소리에 따라서 글자를 만들어서, 그리하여 온갖 사물의 실상(實相)과 통하게 하였고, 삼재의 도리를 책에 싣게 하니, 후세 사람이 능히 바꾸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계는 기후와 토질이 나누어져 있으며, 말소리의 기운도 또한 따라서 서로 다르다. 대개의 나라말은 그 말소리는 있으나, 그 글자는 없다.
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 坤復之間爲太極 而動靜之後爲陰陽。 凡有生類在天地之間者 捨陰陽而何之。 故人之聲音 皆有陰陽之理 顧人不察耳。 今正音之作 初非智營而力索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理旣不二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천지의 이치는 오직 음양과 오행일 뿐이다. 곤(坤)과 복(復)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동(動)과 정(靜)의 뒤가 음양이 되는 것이다. 무릇 천지 사이에 있는 삶을 받은 무리로서 음양을 버리고 어이하랴. 그러므로 사람의 목소리도 다 음양의 이치가 있지만, 돌아보건대 사람들이 살피지 못할 뿐이다. 이제 훈민정음을 지음도 애초부터 지혜로써 이룩하고 힘으로써 찾은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목소리를 따라 그 이치를 다할 뿐이다. 이치는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귀신과 더불어 그 쓰임을 같이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세종~세조 문신, 영의정 역임, 학자)가 쓴 서문과 제자해 초문을 인용하였다.
대부분 '훈민정음'을 소개하거나 설명할 때, 세종의 서문을 소개하고 바로 제자해의 한글 제작 방법에 대한 것을 인용한다. 발음 소리에 착안하여 과학적으로 문자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변함없는 사실(fact)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의 의도치 않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한글 창제를 중국(명나라)으로부터 자주성을 확립하고자 한다는 후대 학자의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원문에 없는 의미를 '확대 해석'하는 잘못이 있고, 문자의 제작 원칙을 중심으로 설명하다보니 한글이 만들어진 진정한 '원리'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실수인 확대 해석에 대하여는 학자마다 주장이 분분하니 여기서는 두 번째 실수에 대한 것만을 말하고자 한다.
한글의 창제는 원리적인 측면으로 재해석,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한글은 소리글이다. 그래서 '훈민정음(訓民正音)'에서 "정음(正音)"이라 한 것이다. 한글이 세계 최고의 문자이고 훈민정음이 문자에 대한 제작을 목적이었으면 '훈민정자(字)라 했을 것이다. 따라서 한글은 글자를 만든 체계나 설명에 요점을 둘 것이 아니라 소리, 다시말해 '바른 소리'에 방점이 있는 것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가 맞는 것이다.
고대의 문자는 말이나 의사 소통의 도구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창조 자연의 원리를 표상화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말, 언어란 단순히 인간 사이에서의 의사 소통과 더불어 인류에게 자연의 이성(理性)을 전하는 숭고한 목적이자 수단인 것이다.
그래서 말은 곧 '신의 말'을 전하는 도구였고 이를 전담하는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긴 했어도, 신탁 또는 제사장의 역할을 하게 된다.
한글은 해례본 서문에서 나타나듯이 "다만 그 목소리를 따라 그 이치를 다할 뿐이다."라는 자연의 이법(理法)을 일반 백성에게 실현코자 하는 숭고한 철학과 사상이 있는 언어이다.
그래서 한글이 위대하고 세계 최고의 언어로서 자리를 갖는 것이다.
자연의 이법(理法)에 대해서는 차차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서양문화에서는 히브리 민족의 언어에서 이러한 전통을 찾을 수 있다.
너무 압축해서 선언적으로 쓰다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어려울 수 있겠다.
간략히 서론만을 적으면, "천지 자연의 조성과 시원이 소리에서 시작하고, 그 소리를 따르는 것이 자연의 이법이며, 이 법에 어긋나 살게되면 인생세간이 불행하게 되기에 지도자는 백성에게 바른 소리를 전하여 널리 이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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