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한류의 뿌리와 그 미래를 말한다

우리 민족의 '한'사상에 대하여
세상을 정화하는 수용과 포용의 감내가 '한'의 본질이다.

데스크 승인 2020.06.21 11:49 의견 0

한류가 세계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한류의 사상적 뿌리와 미래는 어떠해야 하겠는가? 우리 민족의 '한'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정서를 ‘한’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정설인 것 같다.

그런데 한에 대한 해석은 국학이나 사학을 막론하고 응어리, 풀 수 없는 억압과 분노의 내재적 정서 등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900여회의 외침에 대한 일방적 침탈과 착취에 대한 대항할 수 없는 억울함 등으로 한민족의 정서를 표현한다.

그러나 한국의 한의 정서에 대하여 정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일방적 약탈과 대항불가의 억압을 그저 감내하고 그것을 내면화 하여 쌓기만 하는 민족성이라고 이야기를 해야만 할까? 그렇다면 수백 여회의 침탈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면면이 이어오는 우리민족의 굳건한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식민사관의 오염이 아직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적폐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의 한은 다른 관점에서 올바른 이해를 해야 한다.

대부분의 해외사상들은 엄격한 복수가 미덕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정설인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민족에게는 복수의 미덕이나 앙갚음의 용인보다는 용서와 수용적인 문화 기록이 더 많다. 외침에 대해서도 복수를 위한 강병보다는 전쟁 억제력에 비중이 있었고, 정벌 정책도 가급적 평온을 지키는 선에서 최소한으로 진행된 정책이 더 많다. 일본은 침략 전쟁을 두 차례나 일으켜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냈지만 그것으로 인해 일본에 상륙해 초토화 시키는 조정의 정책 시행은 없었다. 북방족의 침입에 대하여도 같은 양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는 고려와 삼국시대를 올라가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사학자 일부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일부는 패배주의의 전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의 정서가 정확히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면 그 의미가 다르게 이해될 것이다.

이러한 한의 정서 본질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좀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원래 그 스스로는 자기 모습을 보는 것에 한계가 있어 다른 모습을 통해서 자기를 반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근동의 사상에서는 그 의미가 남아 있는데 같은 사상의 맥이 동양에서는 거의 잊혀 지고 있는 것이 있다.

모든 물질의 기원은 정신(또는 영)이고 정신은 시작은 미미하지만 후에는 거대한 영향(진동)을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한 곳 또는 지점에서 발생한 원인(진동)은 다른 곳에서 엄청난 결과(영향)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인과응보 또는 인연사상이다. 그러한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같은 원인이나 영향으로 상쇄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을 수용하여 흡수하고 분해하는 완충이 필요하다. 힘에 힘으로 대항하는 것은 힘의 충돌과 증폭만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지혜를 가진 민족이나 집단이 지구상에는 두 민족이 눈에 띤다. 그 중에 한 민족이 히브리 종족이고 또 하나의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인 것이다. 두 민족의 특징은 도전과 응전의 논리보다는 수용과 포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수동적으로 이해되면 침탈과 착취에 대한 일방적 패배와 희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희생은 패배의 결과가 아니라 수용과 포용 곧 용서가 그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흔히 희생양(Scape Goat)이 공교롭게 또는 본의 아니게 대신 희생되는 나약한 희생자(Victim)로 이해를 하는데, 본래 의미는 분노 또는 죄악의 원인적 진동을 흡수하여 분해해 버리는 존재의 의미가 있다. 이를 히브리에서는 메시야라고 지칭을 하는 것이다. (종교적인 사상은 차치하고 사상의 개념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우리 민족의 한 사상은 바로 여기에 본질이 있는 것이다. '한'은 해소되지 못한 분노의 억압감이 아니다. 그로인한 한국인의 다혈질 폭발성의 근성의 원인은 더더욱 아니다.

"바로 세상을 정화하는 수용과 포용의 감내가 한의 본질이다."

민속 문화 속에 녹아 있는 ‘해원’, ‘씻김굿’이라던가 처용가의 의미 등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항상 힘이 모자라고 한반도에 갇혀서 뻗어 나가지 못한다는 사관은 일제의 식민사관 교육에서 비롯된 오염사상이다. 이러한 사상 이론의 정립과 교육에 눈부신 활약을 한 사람들이 일본 사학자들이 아니라 지금도 명예를 갖고 있는 한국의 사학자들이라는 것에 착찹함을 금할 수 없다.

아놀드 박사<choi.arnold64@gmail.com> 한국시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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