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자신문 이창호 칼럼] 작금, 초연결(超連結)의 시대라 한다. 특히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가상 공간에서 수만 명과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우리 사회만큼 불신(不信)과 단절(斷絶)의 골이 깊은 때가 있었는지 되묻게 된다.

정치는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세대와 이념, 성별은 서로를 적대시하며, 심지어 이웃 간의 신뢰마저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기술은 눈부시게 진보했으나,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자산인 ‘신(信)’은 파산 직전이다.

이 거대한 불신의 장막을 걷어낼 방법은 무엇인가? 해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다. 바로 ‘교류(交流)’다. 교류는 곧 신뢰(信)다.

신뢰는 교류의 결과물이자, 동시에 더 큰 교류를 가능케 하는 자양분이다. 물이 고이면 썩듯, 인간과 사회도 흐르지 않으면 부패한다.

이 ‘흐름’이 바로 교류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교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고대 실크로드(一帶一路)는 단순히 비단과 향신료가 오간 길이 아니었다.

동서양의 사상과 기술, 문화가 만나고 융합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신뢰의 통로’였다. 로마가 천년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 역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에 압축된 광범위한 교류의 네트워크와 그로 인해 축적된 제도적 신뢰에서 나왔다.

경제 또한 ‘신(信)’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교류 시스템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 참여자 간의 암묵적 신뢰가 전제될 때 비로소 작동한다.

우리가 화폐를 사용하는 이유도 그것이 교환 가치를 지닐 것이라는 사회적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교류가 활발할수록 신뢰는 두터워지고, 신뢰가 두터워질수록 시장은 번성한다.

반대로 교류가 끊기고 불신이 싹트면, 시장은 위축되고 경제는 활력을 잃는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위기의 본질 역시 ‘소통의 실종’과 그로 인한 ‘신뢰의 붕괴’가 그 속에 담겨져 있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고질적인 병폐인 ‘진영 논리(陣營 論理)’가 그 대표적 사례다.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다름’ 존재가 아닌 ‘적(敵)’으로 규정하고, 대화와 토론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교류마저 거부한다.

귀를 닫고 입만 열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곳에 신뢰가 싹틀 리 만무하다. 디지털 시대의 총아(寵兒)인 알고리즘은 이러한 단절을 더욱 부추긴다. 기술은 이용자가 보고 싶어 하는 정보만을 걸러 보여주며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는 편협한 성(城) 안에 가둔다.

성안의 사람들은 끼리끼리 교류하며 자신들의 신념을 강화하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교류가 아닌 ‘동어반복(同語反復)’에 불과하다. 성 밖의 세상에 대한 무지(無知)는 불신과 공포를 낳고, 이는 곧 '혐오와 배제'로 이어진다.

국제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때 세계화를 외치며 교류의 장(場)을 넓히던 시대는 가고,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의 장벽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공급망은 분절되고, 국가는 ‘우리 편’과 ‘상대 편’으로 나뉘어 블록 경제(Block Economy)를 구축한다.

이러한 교류의 후퇴가 가져온 것은 안정이 아니라, 더 큰 불확실성과 안보 위협이다. 신뢰라는 안전판이 사라진 자리를 힘의 논리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신뢰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끊임없이 만나고 대화하는 ‘교류’라는 수고스러운 과정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다.

신(信)은 ‘사람 인(人)’ 변에 ‘말씀 언(言)’ 자로 이뤄져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말을 섞고 관계를 맺는 행위, 즉 교류 속에 신뢰의 본질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기술이나 더 복잡한 제도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마주할 ‘용기’다.

정치인은 참호(塹壕)속에서 나와 상대방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시민들은 알고리즘의 감옥에서 벗어나 낯선 생각과 만나는 지적(知的)교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무역(貿易)으로 일어선 대한민국에 교류의 중단은 곧 생존의 위기를 의미한다.

쇄국(鎖國)의 길은 고립과 쇠퇴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뼈아픈 역사로 기억하고 있다.

안팎의 도전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번영을 이루는 길은, 오직 더 활발하고 더 깊은 교류를 통해 국가적 신뢰를 재구축하는 데 있다.

교류가 멈추면 신뢰도 죽는다. 신뢰가 죽으면 사회도, 국가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교류는 신(信)이다.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ㆍ국제다자왹교평의회 대표의장ㆍ한중기자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