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10월 13일 나는 서울대학교 개교 기념식에서 '자랑스리운 서울대인상'을 받았다.
그 전에 자연과학대학 유세준 학장으로부터 상 수상자로 추신하였다는 통보를 받고 곤혹스러웠다. 시상증서에는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생물학의 여명기에 교수로 부임하여 인구와 후학양성에 전념, 자연과학대학 초대학장, 부총장, 총장직 제직 중, 대학 안전과 발전에 기여, 그리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원장으로 한림원의 기틀 다지기 그리고 국내 유일한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인구소 유치와 한국후원회 상임고문직으로 연구소 일을 지원하고 있으며 교육부장관 역임 등 서울대학교 동문으로서 대학의 명예 신장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간의 나의 행적을 높이 평가한 서울대학교가 나에게 주는 상이다.
나는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예과부에 입학, 4년간의 외국유학 기간을 제외하고는 오늘까지도 서울대학교 땅을 밟고 살아오고 있으니, 나만큼 서울대학교의 혜택을 입고 살아온 동문은 없을 것이다. 2011년 10월 나는 첫 번째 '자랑스러운 자연대인상'을 받았다. 그때도 무척 민망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서울대학교에 더 많은 은혜 갚음을 해야 할 상황에서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을 받은 것이다.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예과부를 거쳐 신설학과인 생물학과로 진학하였다. 새로운 생물학 분야인 세포학을 전공하였다.
특히 새로 도입된 세포염색법으로 염색한 생쥐 세포를 현미경 밑에서 관찰할 때 나타나는 염색체가 매우 신기하였다. 1952년졸 업한 후 바로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하였다. 당시 새로 나은 항생물질 Streptomycin이 생쥐 백혈구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하여 생쥐 꼬리에서 적출한 혈액을 슬라이드 유리에 실려 혈액 속의 백혈구의 운동능력과 수명을 관살하였고, 그 결과를 정리한 논문으로 1956년석 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나는 1957년 전임강사로 그 후 조교수, 부교수, 교수로 재임하였다. 대학원에 입학하기는 하였지만 연구실 환경이 매우 취약하여 결국 연필과 종이로 깔 수 있는 연구과제인 인류유전학, 집단유전학 등 분아를 택하였다. 특히 '한국인의 유전학적 연구' 과제 중 혀 늘림운동 비교, 색맹의 빈도, 쌍생아 출산율, 그리고 인구동태에 대한 연구 등을 수행하였다.
그 중 ‘한국인의 출생성비' 연구에 집중하였다. 1936년 영국의 Russell 교수는 우리나라 여아 100에 대한 남아출생율이 113.1로세 계에서 가장 높다고 하였다. 한편 경성제국대학 의과대학 내과 Matsuyama 교수는 외래환자를 대상으로 집계한 후 남아출생율이 100.7로세 계에서 가장 낮다고 발표하였다. 나는 어느 편이 옳은지를 밝히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출생성비 연구'에 여러 해를 보냈다. 출생서열별, 부친의 직업별, 연령별, 학력, 도시 및 농촌, 부모의 건강상태에 따른 출생 자료를 기간으로 하여 다각적으로 성비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평균 114.99이어서남 아출생율이 높다는 것을 밝혔다.
1964년, 미국인구협회 연구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킹 랜치' 생식생리학연구실 소속 연구원으로 생활을 하면서 배양 중인 생취 난소로부터 배란을 유도하는 실험으로 2년을 보냈다. 귀국할 때 미국 인구협회로부터 15,000 달러의 연구비를 얻어 이 재원으로 난소 및 난자 배양에 필요한 1,000여종 의 기자재를 주문하였고, 동물 난소 및 난자 배양에 필요한 실험용 기자재를 갖추는데 약 1년이 걸렸다.
그간 대일청구권 자금, IBRD 차관금 재원으로 구입한 기자재로 조직 및 세포 배양 시설이 갖추어 지게 됨으로써, 종이와 연필로 하는 연구로부터 실험실 기자재를 이용한 실험으로 전환하였다.
1960년대 초 함스터 여포난자의 배양을 통한 성숙유도를 비롯하여 배양 중인 생쥐 난소로부터 배란을 유도하고 혹은 배란된 난자의 성숙과정과 관련된 연구에 종사하였다. 귀국 후 록펠러재단으로부터 수령한 연구비 1만5천 달러로 생쥐 난자 배양에 필요한 실험용 기자재 등을 갖춘 실험실을 꾸몄다. 미국, 유럽 등 연구용 기재상으로 부터 전여 종의 연구용 기자재를 주문하였고 연구실이 갖추어지기까지 1년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생쥐 안전방 내 체액을 생쥐 난자 배양장소를 택하였다. 안전방 내 체액을 난소 혹은 난자 배양액으로 이용한 것은 매우 창의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연구 결과를 정리한 논문으로 1969년 서울대학교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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