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기근과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던 조선 시대 백성들에게 고구마는 단순한 식량을 넘어 생명줄과 같은 존재였다. 가뭄이나 병충해에도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고구마는 흉년을 대비한 구황작물로 활용되며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8세기 중반, 조엄이 일본에서 고구마를 가져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했으며, 이후 강필리 등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재배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 고구마의 기원(起源)과 전래(傳來)
고구마의 원산지는 중남미로 알려져 있으며, 16세기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된 후 아시아로 퍼져나갔다. 조선에는 18세기 중반, 조선 통신사 문익공 조엄(趙曮, 1719∼1777)이 일본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했다. 이후 실학자 이광려(李匡呂), 강필리(姜必履, 동래부사), 선종한(宣宗漢) 등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재배에 성공하게 된다. 강필리(姜必履)는 고구마 재배법을 담은 『감저보』를 펴내 우리나라 고구마 재배의 아버지로 불린다. 정조실록(正祖實錄)에는 1794년(정조 18) 서용보(徐龍輔)가 고구마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임금에게 “문익점(文益漸)이 가져온 목화씨처럼 나라에서 종자를 주어 백성들에게 재배를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구마는 감저(甘藷), 감서(甘薯), 남감저(南甘藷), 단감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고 저( 藷)와 서(薯)는 참마라는 뜻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맛이 달고, 기력을 북돋우고, 소화를 돕는 등의 효능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 현대 사회에서의 고구마
1960년대 중반까지는 고구마가 주식처럼 소비될 정도로 서민들의 식탁을 책임졌지만, 그 이후부터 1970년말까지는 고구마를 썰어서 말린 절간고구마를 수매하여 주정을 뽑아서 희석식 소주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하지만 1980년부터 값싼 수입산 타피오카(열대 지방에서 나는 카사바의 뿌리에서 얻은 녹말)가 들어오면서 고구마는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먹거리의 등장으로 인해 예전만큼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얻으며 다양한 가공식품의 원료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찐고구마보다는 군고구마나 고구마를 활용한 다양한 가공 식품인 고구마칩, 고구마 라떼, 고구마 케이크 등 기존의 전통적인 조리법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식품들이 등장하며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고구마에는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 등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건강 기능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항산화 작용, 면역력 증강, 변비 예방 등 다양한 건강 효과가 알려지면서 건강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에게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고구마는 우리 역사 속에서 굶주림에 맞서 싸운 백성들의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조선 시대 백성들의 삶을 지탱해준 소중한 식량이었다. 비록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식재료들의 등장으로 그 중요성이 예전만 못하지만, 고구마가 가진 역사적 의미와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는 것이 시대적 흐름인것 같다.
🔳 참고문헌
1. 윤종채, [고구마], 전주일보, 2014.
2. 새끼깜코, [채소가 자라는 시간 고구마], 새끼깜코의 묘한 라이프, 2023.
3. 리치승승파, [농산물 고구마], 네이버블로그 식품연구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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